[원견명찰] 제도 안 가족, 제도 밖 가족

연신중학교 가정 이재원 선생님

[원견명찰] 제도 안 가족, 제도 밖 가족
Photo by Nathan Dumlao / Unsplash

‘가족’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그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법적으로 인정받은 관계를 뜻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돌보는 사람이 가족이다. 가정의 달인 5월, 우리는 가족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지만, 동시에 묻게 된다. 오늘날의 가족은 과연 누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정의는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현행법상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연결된 관계에 한정된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법적·사회적 기준이며, 복지 제도와 행정 시스템의 핵심 단위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삶의 양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 정의로는 포착되지 않는 관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혼커플, 함께 살아가는 친구, 돌봄을 주고받는 지인 등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아무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제도 밖 가족’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논의를 시작한 제도가 ‘생활동반자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이나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일정 기간 이상 실질적인 생활 공동체를 형성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의료, 재산, 주거 등의 영역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로 논의되고 있다. 아직 법안 발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전통적 가족 형태의 해체 등 사회 변화에 따른 법제도적 대응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해외 사례는 이 같은 논의가 단지 국내에만 국한된 흐름이 아님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1999년부터 ‘시민연대계약(PACS)’을 통해 혼인을 원하지 않는 커플들에게 파트너라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독일 역시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도입해 비혼 동반자에게 상속권, 세제 혜택 등을 인정한 바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전통적 가족의 틀을 보완하며, 다양한 삶의 형태를 제도 안으로 포용하려는 시도라고 평가받는다.

생활동반자법을 둘러싼 국내 논의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제도의 도입이 가족의 법적 정의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으며, 제도를 악용한 위장 등록 등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또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로 먼저 제도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청소년 교육 현장에서의 영향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밖의 가족을 제도 안으로 끌어안기 위한 논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법적 권리는 단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에도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단순히 법률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족’을 어떻게 이해하고 누구에게 보호와 권리를 제공할지를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가정의 달,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그와 동시에, 제도 안의 가족뿐 아니라 제도 밖의 가족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때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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