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종…노숙자, 각국 정상 등 40만 명 추모해
바티칸, 교황 사인 뇌졸중에 따른 심부전으로 밝혀
지난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년 88세로 선종했다.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가 애도했고, 노숙자, 각국 정상 등 40만 명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세계 지도자급 인사들의 추모 발언도 잇따랐다. 정책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립해 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SNS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 편히 쉬시길 바란다”라며 “그와 그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신의 축복이 있길 바란다”라고 애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에 대한 가장 소중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고 했다. 딜라이 라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자신의 행동으로 일관되게 드러냈다”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라는 이름으로 1936년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되었다.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직무 수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스스로 교황직을 사임함으로써 콘클라베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다섯 차례의 투표 끝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황은 환경과 동물, 새의 수호성인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경의를 표하는 새로운 이름을 취했고, 자비와 겸손, 사회 정의를 강조하는 교황직의 기조를 세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기간은 '최초'의 기록으로 가득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 더 나아가 최초의 남반구 출신의 교황이었고, 시리아 출신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즉위한 비(非) 유럽권 출신 교황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로마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수도회인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었다.
다음 '콘클라베' 당선자는?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잇는 267대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 전 세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운 교황은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선출하며, 선거권은 서거 기준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에게 주어진다. 현재 전 세계 253명의 추기경이 있고,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35명이다. 이들은 모두 교황으로 선출될 자격을 가지고 있다. 즉, 모두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투표는 선거 개시 당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투표에 참여하는 모든 추기경은 투표용지의 나는 ‘최고 교황으로 선출합니다'이라는 글귀 아래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어 넣는다.
투표는 무기명으로 행해지며, 추기경들은 평소의 필체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받는다. 둘째 날부터는 교황 후보가 1명으로 좁혀질 때까지 매일 오전에 2번, 오후에 2번 예배당에서 투표를 한다. 만약 둘째 날이 끝날 때까지 결정적인 투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셋째 날은 하루 동안 투표를 정지하고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한다. 추기경 선거인단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나와야 교황이 될 수 있으며, 이 절차는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릴 수 있다. 투표가 끝난 후에는 표 집계, 표 수 검사, 투표용지의 소각이 차례대로 행해진다. 하루 두 번, 투표용지를 태울 때 굴뚝으로 색깔이 있는 연기를 피워올려 투표 결과를 외부에 알리며,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다면 검은색 연기, 선출됐다면 흰색 연기를 피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추기경 시절에도 화려한 관저가 아니라 작은 아파트에 거주하였으며, 바티칸에서 대주는 비행깃값을 빈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검소한 그답게 교황 즉위 당시 월급을 거부하고 기부했으며, 그가 죽은 직후 가지고 있던 재산은 사망 당시 100달러, 한화로 14만 원이라고 한다. “나는 가난한 교회를,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를 원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던 그는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섬김과 단순함의 삶이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교황이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조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