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법 논의 재개해야

학생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서울에서 만들어진 지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고 학교 안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근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여러 교권 침해 사건들을 계기로 교권을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교권이 추락한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권조례가 꼽히고 보수 기독교 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이 ‘동성애를 조장한다’, ‘성병이 창궐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를 악마화해 결국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지난해 4월 폐지시켰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례이지, 교사의 권리를 추락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조례가 전혀 아니다. 실제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보다 교권 침해 사건이 더 적게 발생했다. 이런 통계가 버젓이 있는데도 일부 단체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원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태생적으로 시에서 제정한 조례이고, 폐지되기도 쉽다. 실제로 충청남도와 서울시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기 직전이다.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된 후 ‘학생인권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학생인권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법으로, 시에서 만드는 조례에 비해 폐지되기도 어렵고 국가의 책임도 더욱 강화된다. 학생인권법을 대표발의한 두 명의 의원 중 하나인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은 <토끼풀>과의 인터뷰에서 “학생인권법을 만들면 국가와 교육부의 책임이 강화된다”며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센터, 학생인권위원회가 각 교육청에 설치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관이 설치되고, 법령에 따라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된다면 기존 학생인권조례보다 강력하게 학생 인권이 보호될 것이다.

이러한 학생인권법은 기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던 세력의 반대와 각종 정치적 혼란 상황을 맞닥뜨렸다. 한창민 의원은 “현재 법안이 소위원회에 올라가 있지만,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라며 “반대하는 세력을 잘 설득해 법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청소년과 학생은 근본적으로 약자이다.  교사는 사회적 지위도 보장되고, 학생을 일정 수준까지는 계도할 권한이 있지만, 학생은 그렇지 않다. 까딱 잘못했다간 생기부가 날아가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막아 주는 게 바로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인데, 없으면 안 된다.

머리를 기르고 염색할 자유, 성적 지향을 결정할 자유,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고 종교를 결정할 자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보장되는 것인데,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이 있어야만, 그나마도 적게 보장된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대통령 탄핵 선고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이고, 현재의 혼란이 곧 끝나게 되는데, 정치적인 상황에 매몰되어 그동안 논의되지 못했던 학생인권법에 대한 논의도 조속히 재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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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이신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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