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업무 강도' 급식실, 이대로 괜찮을까

'과도한 업무 강도' 급식실, 이대로 괜찮을까
지난 26일 서울의 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가 김치전을 손수 부치고 있다. 문성호 기자

지난 4월 초, 대전 A여고 급식실 조리실무사(조리사)들 대부분이 모여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주된 요구는 ‘업무 강도 완화’였다. 하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행동하는 조리사들에 대한 교내 구성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A여고 학부모들은 “아이들 볼모로 하는 쟁의행위 철회하라”는 내용의 시위를 진행했고, 학생회도 대자보를 붙여 항의했다. 조리사들의 노동권보다 학생들의 학습권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혹자는 이러한 문제가 A여고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학교 급식실 내부 노동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서울 B중학교를 중심으로 학교 급식실의 노동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업무 강도 '매우 높음'

지난 20일 본지는 서울 소재 B중학교 조리사 전원에게 학교 급식 조리사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B중학교 조리사는 총 9명, 전교생 수는 1028명이다. 교직원 급식까지 포함하면 조리사 1명이 100명이 훌쩍 넘는 분량의 급식을 만드는 셈이다. 그야말로 일당백.

설문조사 결과 B중학교 소속 조리사 9명 전원이 50대 이상으로 고령이었으며, 모두가 B중학교에 5년 이상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하루 평균 6~8시간 동안 일한다. 조리실 근무 환경에 대한 질문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조리실 온도나 환기 상태가 적절하다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 2명만이 ‘보통이다’라고 답했고, ‘아니다’는 7명, ‘전혀 아니다’라고는 1명이 응답했다. ‘식재료나 물품 정리 공간은 충분하냐’는 질문에도 같은 답변이 나왔다. 대부분 인원이 근무 환경에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급식실 인력이 충분한가’라고 묻는 항목에는 ‘보통이다’와 ‘부족하다’가 각각 4명, ‘매우 부족하다’라고는 1명이 답했다. 또한 ‘본래 맡은 업무에 비해 실제로 맡는 노동의 강도가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1명이 ‘보통이다’, 3명은 ‘강도가 높다’, 5명은 ‘강도가 매우 높다’라고 답했다. 대부분 인원이 노동 강도가 과도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9명 중 8명 근골격계 질환 앓기도

또한 B중학교 조리사 9명 중 8명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근육·신경·인대·뼈와 주변 조직에 발생하는 통증 또는 손상을 말한다. 근골격계 질환의 주된 원인은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위나 갑작스러운 자극 또는 반복된 동작으로 인한 자극이며, 잘못된 작업 자세 등에 의해 발생한다.

조리사들 중 다수가 환기시설, 급식실과 휴게실 공간이 개선되기를 원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결국 B중학교는 급식실 및 조리사 휴게실 시설, 업무 강도 등 측면에서 소속 조리사들의 건강에 좋지 않은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맛있게 먹어 주어 고맙다"

A여고, B중학교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급식실 노동 문제,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다. 여러 학교에서 조리사들이 시설환경, 업무 강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추세지만 대부분의 학교 구성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은 조리사들의 고충도 모른 채 급식 식단표에 대해 불평한다. 학생들은 과연 조리사들의 노동 환경과 강도를 알고 있을까. 한 조리사는 “학생들이 맛있게 급식을 먹어 주면 뿌듯하다”는 와중 “업무 강도가 너무 강해서 힘이 많이 든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우리는 급식 식단표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매일 먹는 급식을 만드는 조리사 분들께도 따뜻한 관심을 주어야 한다. 급식실,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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