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방파제'와 학생인권법

안녕하십니까. 토끼풀의 편집장 문성호입니다.
지난 14일, 광화문 근처에 나갔다가 우연찮게 ‘거룩한방파제’라는 단체에서 주최한 집회를 봤습니다. 한 블록 정도 떨어진 종각-을지로 일대에서 개최된 ‘서울퀴어퍼레이드’의 반대 집회 성격인 듯했습니다. 보수 기독교 단체로 알려진 ‘거룩한방파제’의 집회에서는 ‘청소년 에이즈 급증’, ‘학생인권특별법 반대’,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의 구호가 울려퍼졌습니다. 무대에 오른 여러 인사들도 “학생인권법은 학생인권조례보다 더 나쁘다”등의 선동적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이 단체와 기독교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왜곡된 내용이 많습니다. 학생인권조례·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 기독교 단체와 학부모 단체에서 학생인권법과 조례를 비난하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동성애를 조장하고 해로운 인권·성교육을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교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침해된다’, 세 번째는 ‘학생인권조례·법이 진보 쪽에 편향되게 설계됐다’는 것입니다. 셋 다 틀린 주장입니다.
학생인권조례·법은 동성애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를 학교 현장에서 차별하지 못하게 할 뿐, 동성애를 부추기고 장려하는 법이 아닙니다. 학생인권법·조례가 있다고 해서 교사의 권한이 침해되는 것도 아닙니다. 통계적으로 증명되지 못했을 뿐더러,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서 오히려 교권이 신장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학생인권법 조속히 제정돼야’ 사설 참고)
학생인권조례·법은 진보 쪽으로 편향되게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진보 쪽에서 학생인권조례·법을 지지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특정 정치 성향이 아닌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바탕으로 설계됐습니다. 예컨대 ‘체벌 금지’, ‘종교·성별에 따른 차별 금지’ 등은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조항들입니다. 보수라고 해서 체벌이 합리화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빈약한 논리로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을 비난하는 세력은 주로 보수 기독교·학부모 단체입니다. 지난해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폐지를 주도한 김혜영 서울시의원(당시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은 지난해 ‘거룩한방파제’ 집회에 참석해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의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는 성인과의 이성교제와 원조교제를 조장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사생활의 자유는 당연한 권리인데도, 유독 학생에게는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은 학생 인권 보장에 꼭 필요한 규칙입니다. 2000년대 학교에서 만연하던 체벌 문화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사라졌고, 합당한 사유 없이 신체를 구속했던 두발 규제도 철폐됐습니다. 이러한 문화가 10년 넘게 학교 현장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월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잠시 폐지(약 3개월 후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효력이 되살아났습니다)되자마자 한 고등학교에서는 두발 불시검문이 실시됐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완전히 폐지된다면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시도에 취약합니다. 학생인권법이 제정되어 학생 인권이 더욱 폭넓고 강제성 있게 보장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