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보복이 아닌 화해와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갈등과 보복이 아닌 화해와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2025년 5월 23일,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이다. 많은 정치인은 ‘화해와 통합의 정치’를 외쳤던 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매년 그의 묘소를 찾는다. 이번 대선의 후보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생전 노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봉하마을을 찾아 자신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후계자임을 강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진보 진영의 대통령이었지만 보수 진영과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고, 탄핵소추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협치와 포용을 시도했다. 또한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들을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인간 중심적 통합을 추구했다. 비록 정치적·행정적으로 완벽하지는 못했으나 사회 통합과 약자 포용을 내건 그의 정치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계승하겠다고 천명한 두 대선 후보는 과연 그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을까? 화해와 통합 정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의 관점에서 두 후보의 과거와 당선될 시의 공약을 살펴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란 청산’을 내세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내란’의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것이다. 그러며 ‘정치 보복 근절’과 ‘국민 통합’을 함께 명시했다. 내란 청산이 보복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될 경우 권력 행사를 막을 힘이 부재한 만큼 내란 청산과 보복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 간의 지속된 갈등에서 나타난 태도도 주목받는다. 많은 고위공직자를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탄핵하는 과정은 당시에도 큰 우려를 낳았다. 헌법재판소 또한 지난 4월 4일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며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며 대화와 타협의 부재를 지적한 바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첫 지도자를 선출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 통합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이전 정부에 대한 반복적인 정치적 보복의 사슬을 끊고 사회 통합과 화해를 꾀하는 것이 지금과 같이 풍전등화의 상태인 대한민국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 또한 논란의 대상이다. 이재명 후보는 2021년 서울대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성소수자 대학생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과하라”고 요구하자 웃으며 “다 했죠?”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나 한 차례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2024년 말 탄핵 촉구 집회에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의 발언이 길어지자 “할 말이 많다고 계속 저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이런 행사에 와서 그렇게 (계속 이야기) 하면 그게 호소력이 있겠어요? 더 미움만 받지”라고 말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런 모습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자신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어려운 길을 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거듭 호소한다. 자신의 ‘반이재명 연합‘ 거부를 노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거부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정책적 차이는 무시하고 정치적 상황과 자세만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빈 것과 같다.

5월 23일 열린 두 번째 대선 후보자 토론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손바닥에 한자로 '백성 민(民)'을 적고 나와 저소득층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준석 후보는 전장연 시위를 가리키며 “4호선을 이용하는 100만 시민의 발을 묶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고 했다”며 ‘인질극’, ‘비문명적’ 등의 거친 언어로 비난했다.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지난해 동덕여대 시위 사태에 대해서도 “공학 전환 논의가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 때문에 구성원 일부가 학교 기물을 파손하고 래커칠을 해서 학교를 못 쓰게 만들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재임 중 호주제를 폐지하고 첫 여성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탄생시키며 여성 인권 증진의 앞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달리 이준석 후보는 ‘남녀 갈등‘, ’갈라치기’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라는 여론이 대세이다. 그가 노무현의 계승자를 자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자세 뿐만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포용과 갈라치기가 아닌 공존의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을 노무현의 후계자로 자처하며 유권자의 표심을 겨냥한다. 그러나 진정한 후계자는 그의 이름을 빌리는 자가 아니라, 그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일 것이다. 갈등과 분열,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아닌, 화해와 통합, 포용과 공존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이가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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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이신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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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토끼풀의 편집장 문성호입니다. ‘왜 종이신문을 만드는가’ 저희가 꽤나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왜 종이신문을 만들까요? 종이신문은 소위 ‘한물 간’ 매체인데 말입니다. 실제로도 종이 신문은 사양 산업이고,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으로 대표되는 주류 신문사들의 발행 부수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매달 종이 신문을 만듭니다. 적자까지 보면서요.  종이신문은 사라지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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